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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수업]을 읽고 시놉시스, 그리고 생각 쓰기

Posted by 진다방
2017.01.11 20:02 이것저것/책로그

[작가 수업]을 읽고 시놉시스, 그리고 짧은 생각 쓰기




<살인몽>


이야기는 ‘꿈과 현실 그리고 소녀와 악마’에 관한 이야기다. 가제는 ‘여긴 어디? 나는 누구?’다. 소녀는 조용하고 착한 중학생이다. 꿈과 현실을 구별을 못하는 소녀의 연쇄 살인 이야기다. 나는 꿈과 현실의 구별, 선으로 인식되는 소녀와 최고의 악인 살인을 충돌시키는 것으로 이야기를 생각해보았다. 이야기는 친구들이 소녀를 집단으로 괴롭히고 심지어 때리면서 시작된다. 왕따를 당하는 소녀는 후환이 무서워 아무에게도 속사정을 말하지 못하게 된다. 친구들의 괴롭힘과 구타는 더 심해지게 되고 소녀는 점점 외상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을 지게 된다. 우울증과 정신병을 앓게 되고 꿈에서까지 괴롭힘을 당하는 꿈을 꾼다. 그러던 중 똑같이 꿈에서 괴롭힘을 당하게 되고 소녀는 우발적으로 친구 한 명을 죽이게 된다. 놀라서 깬 소녀는 일종의 희열을 느끼게 된다. 그 느낌을 잊지 못한 소녀는 꿈을 꾸는 것을 기다리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괴롭힘을 당하는 대신 친구들 한 명 한 명 살인을 하는 꿈을 꾸게 괸다. 그 꿈에서의 살인 방법이 점점 정교하고 계획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꿈을 꾸지 않게 되고 소녀는 그 꿈을 계속해서 기다린다. 꿈속에서의 연쇄살인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꿈을 꾸게 된 소녀는 꿈에서 처음 죽인 친구를 계획적이고 아무런 흔적이 없게 살인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계속해서 다시 차례대로 꿈에서 이전보다 더 잔인하고 완전범죄를 하게 된다. 꿈을 꾼 다음날 학교에선 그 친구들을 볼 수 없게 된다. 꿈에서 연쇄살인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엔 현실에서 살인을 한 것이다. 선생님과 경찰들은 평소 살인당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주위 친구들의 증언으로 소녀를 의심하게 되지만 아무런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 소녀는 자신이 현실에서 저지른 살인을 꿈에서 한 것이라 착각을 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꿈과 현실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게 되고 이러한 혼란은 심해져 정신분열증에 걸리게 되고 이러한 정신병은 전에 괴롭힘을 당할 때보다 심하게 된다.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그 입원한 첫날 소녀는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그 꿈에서 병원 옥상에서 자살하는 꿈을 꾸게 되고 그 꿈은 현실에서 일어난 것이다. 결국 소녀는 마지막까지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살을 하는 것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표현과 소통에 대한 짧은 생각>

언어는 의미일 뿐 아니라 느낌이다

내 관점에서 따르면, 우리는 보통 언어, 즉 글을 쓰거나 대화를 할 때 쓰는 언어들을 의미론적인 부분에서만 생각을 한다. 가령, ‘이것의 뜻은 무엇, 저것의 뜻은 무엇’과 같은 시스템이다. 하지만 좀 더 잘 생각해본 사용하는 언어들이 한정적이고 가끔 처음 보거나 듣는 언어들이 있다. 우리는 이럴 때,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그 의미에 대해 느낌으로 유추해질 때가 있다. 이러한 것은 우리들이 의식하지는 않지만 한번쯤은 비슷한 상황을 경험해봤던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유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와의 논박에 대한 생각

 레이코프가 말한 체험주의(인지주의)적 관점을 보면 인간의 뇌는 컴퓨터와 같이 고정된 정보처리 시스템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인식하면서 산출’하는 신비로운 활동임을 인정한다고 하였다. 이 말에서 보면 상대가 선점한 프레임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의식하는 것 자체가 이미 그 프레임을 인지하고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프레임에서 계속 논쟁을 벌이게 되면 상대방에 프레임을 반박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아예 전혀 다른 프레임으로 상대방을 들어오게 하는 방법을 써야한다. 즉 상대방의 프레임에 반대되는 프레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주제에 전혀 다른 프레임을 가지고 와서 상대방을 나의 프레임 안에서 논쟁을 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감정 슬픔에 대한 생각

정확히 고등학교 3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 체대를 준비하고 있어 운동을 했던 나는 그 해 봄부터 허리디스크를 앓고 있었다. 결국 여름방학이 시작한 동시에 시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시술이 잘못되어서 간헐적으로 몸의 마비가 오는 일이 있었다. 그러던 중 물리치료를 받고 집에 오는 길에 몸이 마비가 되어서 길에서 꼼짝 못했던 일이 발생하였다. 살고 있던 아파트 단지 내에서 마비가 온 것이었는데 사람들은 나의 식은땀과 도움요청을 듣고도 모른 척 지나갈 뿐이었다. 결국 아버지가 오셔서 나를 끌고 집에 갔었던 적이 있었다. 여기까지는 모르는 사람들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일이 있고 며칠 뒤 학교를 갔었다. 똑같이 마비가 와서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었다. 이때도 똑같이 아파하고 도움요청을 하였지만, 같은 반 학우들은 겁이 나서 그런지 쉽게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았다. 결국 20분정도 있다가 아랫반 친구가 도와줘서 양호실에 갔었던 적이 있었다. 이때,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슬픔을 느꼈고, 모멸감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던 경험이다.

감정 공감에 대한 생각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들의 행동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 이유는 나처럼 허리디스크로 인한 고통을 느껴보았던 사람이나 친구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모른 척 지나간 사람들이나 쉽사리 다가오지 못했던 친구들은 그 고통과 힘듦을 공감해줄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위에서와 같은 일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그들이 아주 조금이라도 내가 어떠한 고통을 느끼고 있고 조금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슬픔과 모멸감 보다는 그들에게서 진정성과 고마움, 기쁨 등을 느꼈을 것 같다. 실제로 위사건 이 후에 나는 대인공포증과 같은 증상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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