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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다가

Posted by 진다방
2016.12.21 13:14 이것저것/영화로그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 알랭 드 보통, 김한영 옮김

 

1장 낭만주의

P12. 결혼의 시작은 청혼이 아니고, 심지어 첫 만남도 아니다. 그보다 훨씬 전에, 사랑에 대한 생각이 움틀 때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맨 처음 영혼의 짝을 꿈꿀 때다.

- 어느정도 공감하는 이야기다.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나기전부터 나는 결혼하는 것을 꿈꿔 왔고, 영혼의 짝이 어딘가에 존재하겠지라는 생각을 항상 하였다. 그것이 내가 결혼해야하는 시작점이 된 것이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 독신주의자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독신주의자가 마음을 바꿔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는 경우는 드물다. 결혼의 시작은 내가 아님 너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결혼할만한 이상형을 그리는 순간부터인 것이다.

 

P27.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심산할 만큼 감동적인 최초의 순간들에 잠식당하고 기만당해왔다. 우리는 러브스토리들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왔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 우리는 평소 지인커플을 만났을 떄 물어본다. “사귄지 얼마나 되셨어요?”, “처음에 어떻게 만났어요?” 혹은 지금 자신의 상황에 맞게 “안 싸우세요?”라는 질문을 한다. 특히 처음에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해 물어볼 때 우리의 눈빛을 우리가 못봤을 뿐 설레고 뭔가가 있겠지라는 호기심 가득찬 눈빛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첫만남의 중요도만큼 지금까지 어떻게 커플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은 것 같다. 왜 그런것인가. 사실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가보다 어떻게 사귐을 유지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아니면 많은 연애를 통해 뻔하겠지라는 생각이 우리들 머릿속에 공유지식처럼 퍼져있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요새 사이는 괜찮아?”라는 질문에 “뭐 그렇지. 다 비슷하잖아.”라는 대답을 할 때가 있다. 이 얼마나 멍청한 대답인가 그럼 60억 인구가 똑같은 연애, 똑같은 결혼생활을 한다면 교과서를 내도 될 것이다. 이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대답을 해줘야 되겠다.

 

P.31 사랑은 약점에 관한 것, 상대방의 허약함과 슬픔에 감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그 약점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이 없는 시기에(즉, 주로 초기에)그렇다. 연인이 위기에 빠져 낙담하거나 어찌할 줄 모르고 우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그들이 여러 가지 장점을 갖고 있지만 격원할 만큼 천하무적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하게 된다. 그들 역시 혼란스러워하고 망연자실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깨달음을 통해 우리는 지지자로서의 새 역할을 부여받고,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덜 부끄러워하게 되고 아픈 경험을 공유하면서 연인들과 더 가까워지게 된다.

-초반에 항상 잘보이려는 연애, 사람은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의 연인들 앞에서 실수하게 된다. 초기에 일어나는 작은 실수는 오히려 더 ‘귀여워’라고 보일 수 있고, 좀 더 편안해지며, 안심이 되기도 한다. 또 하나 연인에게 지지자라는 역할을 부여 받게 된다. 그리고 뭔가를 더 도와줄 수 없을까라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더 사랑에 빠지게 된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랑에 빠지게 된다라기 보다 공감영역이 늘어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관계에서 중요한건 이 부여받은 지지자의 역할이 내가 할 수 있는 선이란걸 넘어선 안되고 또 지지자를 자청하는 제스처를 취하면 유지가능할 정도로만 해야한다는 것이다. 선을 넘었을 경우 “얘는 나한테 너무 기대”라는 생각이 들게 되고 그 관계는 거기서부터 망가지게 되는 것이다.

 

P.45 그들이 마친 행위를 ‘사랑을 나누다’라고 칭하는 데 수줍어할 일만도 아니다. 그들은 단지 섹스를 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감정-인정, 애정, 감사, 내맡김-을 물리적 행위로 옮긴 것이니.

우리는 흥분이라 부르지만, 사실 그 말이 암시하는 바는 드디어 우리의 내밀한 자아를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 연인이 나의 본모습에 두려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격려하고 인정하는 쪽을 선택했다는 발견의 기쁨이다.

P47. 우리를 흥분시키는 구체적요인들은 기이하고 비논리적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보다 건전하다고들 하는 다른 삶의 영역들에서 우리가갈망하는 자질, 즉 이해, 공감, 신뢰, 조화, 관대함, 친절함의 메아리가 담겨 있다. 많은 에로틱한 자극의 이면에는 우리의 가장 큰 두려움들에 대한 상징적 해소, 또는 친밀함과 이해를 향한 갈망에 대한 가슴 시린 암시가 깔려 있다.

- 원나잇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몇몇 이들은 원나잇을 했다는 것에 대해 자랑처럼 얘기해본다. 그래 좋다. “하루 즐기고 노는 거지 뭐.” “다음날 어떻게 하는데?” “해장국 한 그릇씩 하고 쿨하게 헤어져.” 그들은 진짜로 쿨한 것인가 대부분 아침에 현자타임이 온다고 한다. 섹스나 자위 그 자체 행위에 대한 공허함이 아닐 것이다. 그 시점에 온 현자타임은 단지 행위를 끝내고 난뒤에 현자가 아니라 행위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감(감정)의 현자타임일 것이다. 섹스파트너도 그렇다. 그들은 정말로 만나서 섹스만 하는가. 아니다 가끔 술먹고 좀 뭐하면 영화도 보고 섹스를 한다. 영화와 술은 왜 먹는가. “만나서 섹스만하긴 뭐하잖아. 얘기도하고 술도좀 마시고 하는거지”. 역시나 누군가와 술을 먹는다는 것, 섹스를 하기전에 일련에 무언갈 하는 행동 역시 감정적인 교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아무것도 신경안쓰고 가볍게 섹스만 하는 사이는 불법적인 성매매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밑줄친 감정, 인정, 애정, 감사, 내맡김의 물리적 행동이 우리가 보통 사랑을 나누다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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